이직을 앞둔 30대 후반 직장인이 회사 퇴직연금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회사가 DB형(확정급여형, 회사가 운용해 퇴직 시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DC형(확정기여형, 매년 낸 돈을 본인이 직접 운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직후였다. 남은 근속연수와 예상 임금 인상률을 두고 어느 쪽이 유리한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위 사례는 다수 상담 사례를 재구성한 것으로 특정 개인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나
이 직장인은 입사 8년 차였고, 몇 년 안에 팀장 승진을 앞둔 시점이었다. 회사는 매년 임금 인상률이 완만한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 성과급 비중이 커지는 구조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문제는 퇴직까지 남은 기간이 15년 넘게 남아 있어서, 지금 당장 유불리를 계산하기가 애매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 상환이 남아 있어 앞으로 목돈이 필요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향후 중도인출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변 동료 중 일부는 DC형으로 바꿔 개인적으로 펀드를 운용 중이었고, 일부는 그대로 DB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각자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만, 정작 본인 상황에 맞는 기준을 명확히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선택은 이렇게 진행했다
먼저 회사의 최근 5년치 임금 인상 추이 자료를 인사팀에 요청해 확인했다. 이어 회사가 제공하는 DC형 운용 상품 목록과 수수료 구조도 함께 받아봤다. 이 두 가지 없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DB형은 퇴직 직전 평균임금과 근속연수로 퇴직금이 정해지는 구조라, 임금 상승률이 높을수록 유리해진다. DC형은 매년 납입금을 본인이 직접 운용해 수익을 쌓는 방식이라, 임금 상승률보다 운용 수익률이 더 중요해진다. 결국 이 직장인은 승진과 임금 상승이 가까운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해, 당분간 DB형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DC형 운용 상품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원리금보장형(예금처럼 정해진 이자를 지급하는 상품)과 실적배당형(펀드처럼 운용 성과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상품)의 차이도 새로 알게 됐다고 한다. 안정성을 우선할지, 장기 수익을 노릴지에 따라 비중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 적잖은 부담으로 느껴졌다.
몰랐던 것·헷갈렸던 것
가장 헷갈렸던 부분은 전환이 한 번 결정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DB형에서 DC형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반대로 DC형에서 DB형으로 돌아가는 것은 회사 규약상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또 하나 헷갈렸던 지점은 중도인출과 담보대출 조건 차이였다. DC형은 주택구입, 장기요양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있으면 본인 계좌에서 직접 중도인출이나 담보대출이 가능하지만, DB형은 구조상 개인 계좌가 없어 담보대출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이 차이를 모른 채 막연히 퇴직금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전문가라면 이렇게 조언합니다
전문가들은 통상 남은 근속연수와 임금 상승 구조를 먼저 따져보라고 조언한다. 근속연수가 길게 남아 있고 임금 인상률이 안정적으로 높은 직장이라면 DB형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이직이 잦거나 성과급 비중이 커서 매년 임금 인상률이 들쭉날쭉한 경우에는, DC형으로 스스로 운용하는 편이 맞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전환 시점도 함께 고려할 대상으로 꼽힌다. 승진이나 큰 폭의 임금 인상이 예정된 시점 직전에 DC형으로 넘어가면, 그 이후 오른 임금이 퇴직급여 계산에 반영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일반적인 경향일 뿐, 개인의 투자 성향과 회사의 임금체계, 남은 근속기간에 따라 결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전환을 고려한다면 회사의 임금 인상 이력 자료와 DC형 운용 상품의 수수료·과거 수익률을 함께 검토한 뒤 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퇴직연금은 한 번 정하면 오래 유지되는 결정이라 성급하게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본인의 근속 계획과 회사의 임금 구조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첫걸음이다.